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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신문명 | 날짜 | 발행구분 | 면수 | 단수 | 기사제목 | 원문보기 |
|---|---|---|---|---|---|---|---|
| 1 | 동아일보 | 1925-02-23 | 무 | 04 | 05 | ||
| 2 | 동아일보 | 1925-08-08 | 무 | 03 | 09 | ||
| 3 | 동아일보 | 1928-07-22 | 무 | 08 | 09 | ||
| 4 | 동아일보 | 1931-12-26 | 무 | 03 | 08 | ||
| 5 | 동아일보 | 1932-01-12 | 무 | 02 | 01 | ||
| 6 | 동아일보 | 1932-07-14 | 무 | 03 | 07 | ||
| 7 | 동아일보 | 1932-10-27 | 무 | 03 | 10 | ||
| 8 | 동아일보 | 1932-11-08 | 무 | 02 | 05 | ||
| 9 | 동아일보 | 1933-08-13 | 석간 | 03 | 08 | ||
| 10 | 동아일보 | 1937-06-04 | 조간 | 02 | 01 | ||
| 11 | 동아일보 | 1937-06-12 | 조간 | 04 | 04 | ||
| 12 | 동아일보 | 1937-06-17 | 조간 | 02 | 01 | ||
| 13 | 동아일보 | 1937-06-17 | 조간 | 04 | 01 | ||
| 14 | 동아일보 | 1937-06-17 | 석간 | 02 | 02 | ||
| 15 | 동아일보 | 1937-06-18 | 조간 | 03 | 01 | ||
| 16 | 동아일보 | 1937-06-18 | 조간 | 03 | 01 | ||
| 17 | 동아일보 | 1937-07-21 | 석간 | 02 | 07 | ||
| 18 | 동아일보 | 1937-07-25 | 조간 | 04 | 01 | ||
| 19 | 동아일보 | 1937-09-16 | 석간 | 02 | 01 | ||
| 20 | 동아일보 | 1937-09-17 | 조간 | 03 | 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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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신문명 | 날짜 | 발행구분 | 면수 | 단수 | 기사제목 | 원문보기 |
|---|---|---|---|---|---|---|---|
| 21 | 동아일보 | 1937-09-17 | 조간 | 03 | 01 | ||
| 22 | 동아일보 | 1937-10-31 | 석간 | 02 | 01 | ||
| 23 | 동아일보 | 1937-11-01 | 석간 | 02 | 03 | ||
| 24 | 동아일보 | 1937-11-02 | 조간 | 03 | 01 | ||
| 25 | 동아일보 | 1937-11-02 | 조간 | 03 | 01 | ||
| 26 | 동아일보 | 1937-11-02 | 석간 | 02 | 01 | ||
| 27 | 동아일보 | 1937-11-03 | 조간 | 02 | 02 | ||
| 28 | 동아일보 | 1937-11-05 | 조간 | 02 | 09 | ||
| 29 | 동아일보 | 1937-11-06 | 조간 | 02 | 05 | ||
| 30 | 동아일보 | 1937-11-21 | 조간 | 02 | 01 | ||
| 31 | 동아일보 | 1937-11-26 | 조간 | 02 | 01 | ||
| 32 | 동아일보 | 1937-11-26 | 석간 | 02 | 05 | ||
| 33 | 동아일보 | 1937-11-28 | 조간 | 08 | 01 | ||
| 34 | 동아일보 | 1937-11-30 | 조간 | 02 | 01 | ||
| 35 | 동아일보 | 1937-12-29 | 석간 | 02 | 01 | ||
| 36 | 동아일보 | 1938-01-04 | 석간 | 02 | 01 | ||
| 37 | 동아일보 | 1938-01-04 | 석간 | 02 | 01 | ||
| 38 | 동아일보 | 1938-02-15 | 조간 | 02 | 01 | ||
| 39 | 동아일보 | 1938-04-17 | 조간 | 02 | 06 | ||
| 40 | 동아일보 | 1938-05-14 | 조간 | 04 | 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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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신문명 | 날짜 | 발행구분 | 면수 | 단수 | 기사제목 | 원문보기 |
|---|---|---|---|---|---|---|---|
| 41 | 동아일보 | 1938-07-26 | 석간 | 02 | 01 | ||
| 42 | 동아일보 | 1939-06-02 | 조간 | 02 | 07 | ||
| 43 | 동아일보 | 1939-06-23 | 석간 | 02 | 01 | ||
| 44 | 동아일보 | 1939-08-31 | 조간 | 02 | 06 | ||
| 45 | 동아일보 | 1939-09-27 | 석간 | 02 | 04 | ||
| 46 | 동아일보 | 1939-11-12 | 석간 | 02 | 02 | ||
| 47 | 동아일보 | 1940-04-03 | 조간 | 02 | 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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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신문명 날짜 발행구분 면수 단수 기사제목 원문보기
1 동아일보 1925-02-23 무 04 05 本社 楊州前分局長 李鍾萬君 辭退, 分局長 李思恒 總務兼 記者 尹炳璋 記者 申榮植 顧問 朴禮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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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아일보 1925-08-08 무 03 09 瑞山勞働共濟講演: 勞働(金榮燦), 勞働運動(李鍾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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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아일보 1928-07-22 무 08 09 瑞山支局, 支局長 李鍾萬 記者 李義柱 任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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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동아일보 1931-12-26 무 03 08 瑞山支局變更; 尹銀同任支局長, 支局長李鍾萬 依願解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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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동아일보 1932-01-12 무 02 01 鍾路署秘社 各地로 擴大, 취조에 딸하 더욱 확대 唐津서도 鄭鶴元(源?) 李鍾萬等 三名押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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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동아일보 1932-07-14 무 03 07 現金支拂코 小米를 配給, 李鍾萬鑛主美擧(新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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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동아일보 1932-10-27 무 03 10 慶州支局: 李鍾萬 任甘浦分局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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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동아일보 1932-11-08 무 02 05 靑年投身未遂 ; 光化門通居住 李鍾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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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동아일보 1933-08-13 석간 03 08 洪水 끝에 溺死 : 李鍾萬씨(驪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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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동아일보 1937-06-04 조간 02 01 蔚山敎育事業에 十餘萬圓 喜捨, 大峴面 農蠶校設立基金으로 鑛業家 李鍾萬氏 壯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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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동아일보 1937-06-12 조간 04 04 蔚山甲種 農業校에 一萬圓 又復喜捨 농교 기부금 미해결을 듣고서 李鍾萬氏의 美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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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동아일보 1937-06-17 조간 02 01 實現될 農民의 樂園, 農村事業에 巨彈「大同農村社」의 劃期的事業 處處에 模範農村建設, 作人에게 耕地分配 卅年後엔 法人組織體에 參與靑年養成의 農事院도 設立, 李鍾萬씨가[寫 : 대동농촌사의 사업구체안 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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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동아일보 1937-06-17 조간 04 01
- 金鑛王 李鍾萬氏 抱負와 多彩의 社會事業, 勞働者와 農民의 親友!//
- 사람은 일하여야 산다. 일하는 사람은 먹어야 산다//
- 農村理想化의 進一步//「作人에게 田地를」의 標語로 自治農村을 建設, 五十萬圓의 巨金을 던지어 累進的으로 第二, 三農村創定//朝鮮唯一의 大金山, 하늘 아래 第一洞 長津金山 宛然 金石地帶! 八個月間 六十萬圓의 産金 深山에 巨大한 科學設備//
- 大同鑛業會社와 中央組合을 創立, 지난 六日 창립총회를 열고서 勞資同體의 有機組織[寫 : 大同鑛山中央組合 創設 紀念 撮影]//
- 長津鑛山의 由來//
- 勞働者 人格的待遇와 自治制度를 實施, 自業같이 기뿜으로 服務//無見實行의 靑年 長津鑛業所長 李永兆氏//
- 理想實踐에 勇進 卄八回 失敗코 奮起, 今日의 確乎한 基盤싸키까지 李氏의 걸어온 半生荊路//
- 營鑛合理化의 첫 式驗 잠자는 地下富源을 能率的으로 採掘, 筋勞의 鑛夫에게도 權利 주어. 自治的으로 鑛山 經營//
- 五道에 亘하야 七百五十鑛 所有 七億六千萬坪을 所有//從業 鑛夫 子女를 爲해 普通學校를 設立 休憩所와 施療機關 두어//
- 家族生浩은 一, 二萬圓으로 足! 李鍾萬氏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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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동아일보 1937-06-17 석간 02 02 大同農村社 事業具體案 發表, 李鍾萬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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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동아일보 1937-06-18 조간 03 01 用財의 好模範 李鍾萬氏의 壯擧, 大同農村社 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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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동아일보 1937-06-18 조간 03 01 用財의 好模範 李鍾萬氏의 壯擧, 大同農村社 창립[社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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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동아일보 1937-07-21 석간 02 07 李鍾萬氏 千圓을 寄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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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동아일보 1937-07-25 조간 04 01
蔚山地方紹介版 ; 紹介版을 내노흐며(蔚山支局任守吉)//
- 嶺南東端의 雄都大蔚山 建設에 飛躍 水陸交通網의 劃期的施設 天惠的海陸産物豐富//
- 蔚山文化의 鳥瞰圖 燦然한 人材가 輩出 血淚와 苦鬪의 자취//
- 「躍進蔚山에」蔚山郡守 李▶(王+曳)東氏談[肖]//
- 鑛山王 李鍾萬氏 鄕里蔚山의 事業[肖]//安民樂士! 蔚山蓧原署長談[肖]//
- 一平生所願이 「慈善과 敎育」 蔚山의 恩人 金佐性翁[肖]//
- 誠實한 事業家 實業家 車溶珪氏[肖]//
- 邑民負擔을 考慮 邑政은 漸進主義로 蔚山邑長 桂登利藏氏[肖]//
- 將來洋洋한 靑年實業家 金在文氏[肖]//
- 水産界의 巨星 水産界 金容采氏[肖]//
- 擧郡一致協力 「敎育蔚山」建設에 만장의 기염을 토하는 교육열 蔚山敎育界의 現狀!//
- 敎育界의 先進 水組長 朴宗默氏[肖]//
- 抱負와 經倫은 「實踐如何」에 着實한 篤農家 李根守氏[肖]//
- 不羈豪膽兒 企業家 李鍾絅氏[肖]//
- 典型的使徒 金德球氏[肖]//
- 社會的活動家 刀圭界 安孝式氏[肖]//
- 蔚山短評//
- 事業界風雲兒 益齡堂 李圭明氏[肖]//
- 腦神經科의 權威 中央醫療院 辛島皐鶴氏[肖]//
- 潑溂한 政論客 雄辯家 金活天氏//
- 海産物巨商 卞東允氏[肖]//
- 敏腕漁業家 李圭漢氏[肖]//
- 屈指의 漁業家 方魚津 白斗先氏[肖]//
- 唯一의 美術家 崔元石氏//溫川面漁業家 具允益氏[肖]//
- 敏活한 手腕家 寺島登氏[肖]//透徹한 敏腕家 夏目保夫氏//
- 瓦西面元老 李士鉉氏[肖]//
- 誠實一貫主義 吳興鎬氏//
- 行政의 敏腕家 金敎轍氏[肖]//
- 自手成功家 玄基鳳氏//
- 慈善篤農家 金燦熙氏[肖]//
- 新進實業家 金基錫氏[肖]//
- 江東篤農家 金基潤氏[肖]//
- 堅實主義者 朴學根氏//
- 明朗한 活動家 張德根氏//
- 實踐窮行主義 李完熙氏[肖]//
- 敏活한 手腕家 尹寶根氏[肖]//
- 熱血事業家 成石奉氏//靑年篤農家 吳文致氏[肖]//
- 自手成功家 吳一泳氏//
- 鐵工界의 巨人 吉田安一氏//
- 運輸界의 巨星 李相永氏//
- 智德兼全之人 裵仁燦氏[肖]//
- 實業界의 重鎭 彥陽 朴炫鎭氏//
- 事業界 快男兒 金奎煥氏//
- 中堅實業家 尹啓煥氏[肖]//
- 一流事業家 方魚津 尹德鎬氏[肖]//
- 江東漁業家 金載輻氏//
- 白楊寺古佛 尹菩薩女史[肖]//
- 人氣百퍼센트 料理界元祖 訪春館//
- 大峴面篤農家 沈尙植氏//
- 官民理解相通 蔚山 文稅務署長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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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동아일보 1937-09-16 석간 02 01
小作制度의 巨彈! 作人七割 地主는 三割制 農村事業家 李鍾萬氏가 所有土地에 實施, 農村更生의 新光明[肖]//
- 農村疲弊의 原因은 作料太高에 專任 數字와 理論을 確立//
- 卅年後所有權도 讓與 相扶相助共存을 强調하는 李鍾萬氏談 「農村生活의 明朗化企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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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동아일보 1937-09-17 조간 03 01
作人七割, 地主 三割制 ; 李鍾萬氏의 壯快한 美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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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신문명날짜발행구분면수단수기사제목원문보기21 동아일보 1937-09-17 조간 03 01 作人七割, 地主 三割制 ; 李鍾萬氏의 壯快한 美擧[社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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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동아일보 1937-10-31 석간 02 01
「大崇實」의 新主人公出現! 百卄萬圓의 巨金投擲, 崇實專門「後繼」經營 鑛山科와 師範科도 新設, 慧星! 鑛山家 李鍾萬氏 特志//
三年間은 崇實專校舍借用//「新校設立이 妥當, 崇實引繼는 不可能」 宣敎會 魯解理氏談//財團과 內容充實하면 新校設立을 認可, 鹽原學務局長談//崇實專門引繼案[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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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동아일보 1937-11-01 석간 02 03 更生의 喜消息 듣고 崇專代表上京, 理事 敎授校友代表等 六氏 李鍾萬氏에게 致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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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동아일보 1937-11-02 조간 03 01 大崇專의 還生 李鍾萬氏의 壯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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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동아일보 1937-11-02 조간 03 01 大崇專의 還生, 李鍾萬氏의 壯擧[社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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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동아일보 1937-11-02 석간 02 01 崇專 今日中廢校申請, 宣敎會 責任 안지면 在學生까지 引受豫定 不然이면 開校하면서 學生新募, 後繼財團의 善後策//情勢判明되는 대로 後繼側代表 赴壤, 關係方面과 折衝次, 李鍾萬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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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동아일보 1937-11-03 조간 02 02 李鍾萬氏 崇專에의 篤志祝賀會 五日 午後四時半 食道園에서 京城各界有志網羅//發起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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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동아일보 1937-11-05 조간 02 09 李鍾萬氏 崇專에의 篤志, 祝賀會를 今夕開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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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동아일보 1937-11-06 조간 02 05 李鍾萬氏壯擧 뒤따라 平壤人士들이 發奮, 崇專新校舍의 基地等도 提供, 雨順風調의 崇專前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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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동아일보 1937-11-21 조간 02 01 再建途上의 崇專 健步, 平壤社會總動員! 校基寄附를 計劃, 校友 五萬圓으로 記念館建築, 李鍾萬氏 壯擧의 反響//理事五氏를 選定 正式書面도 不遠提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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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동아일보 1937-11-26 조간 02 01 崇專後繼財團法人 近日中書類提出 李鍾萬氏, 道知事와 圓滿會見(平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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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동아일보 1937-11-26 석간 02 05 崇專後繼工作進陟 李鍾萬來壤 道知事와 會見, 各方面人士들 聲援(平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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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동아일보 1937-11-28 조간 08 01 二萬餘圓 또 喜擲! 蔚山 第二普校 設立費로, 敎育의 熱誠家 李鍾萬氏 美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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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동아일보 1937-11-30 조간 02 01 再建에 驀進하는 崇專 新校名을 메고 誕生, 李鍾萬氏 學務局長 訪問코 協議, 事務折衝을 道에 一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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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동아일보 1937-12-29 석간 02 01 新校設立具體案決定 ; 文科廢止 農科만 設置, 「崇實」新校名으로 出現, 李鍾萬氏側 道와 最後折衝, 現校舍를 二年間貸借//歷史 깊은 「崇實專門」 實際上 永久消滅, 明春農科新入生募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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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동아일보 1938-01-04 석간 02 01 廢校의 悲運을 一掃 萬世盤石 우의 崇專 私學界의 寵兒 「大同工科專門」新春의 健步를 期待[肖 : 李鍾萬]〔寫 : 崇專本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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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동아일보 1938-01-04 석간 02 01 廢校의 悲運을 一掃 萬世盤石 우의 崇專 私學界의 寵兒 「大同工科專門」 新春의 健步를 期待[肖 : 李鍾萬][寫 : 崇專本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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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동아일보 1938-02-15 조간 02 01 二十萬圓의 巨財 던저 中等職業學校 設立 明春까지엔 學校設立을 完成, 晋州 河泳珍氏의 特志[肖 : 河泳珍 李鍾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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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동아일보 1938-04-17 조간 02 06 社會事業에 써달나고 卅萬圓 金鑛贈與 成川 李冕均氏가 李鍾萬氏께[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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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동아일보 1938-05-14 조간 04 02 三浦小學設立에 又復三千圓 喜捨 「始終 如一한 李鍾萬氏 壯擧(長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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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신문명날짜발행구분면수단수기사제목원문보기41 동아일보 1938-07-26 석간 02 01 成川中學期成會에 巨財를 寄附키로 李鍾萬 李冕均 兩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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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동아일보 1939-06-02 조간 02 07 光熙培花學校에 十萬圓을 快擲 李鍾萬 河泳珍 兩氏의 美擧 二年制 職業校도 新設[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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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동아일보 1939-06-23 석간 02 01 颱風실은 「미슌회」開幕 延專·世專과는 訣別, 貞信은 李鍾萬氏夫人 引繼請願//今日貞洞 「모리스홀」에 百餘宣敎師參集//信託을 固執해도 財團法人 속에 든 以上 할 수 없다 世專은 不動의 姿勢//世專當局談//「引退決議 如何不拘 延專前途에는 無關」 宣敎引退도 反對主張//延專元校長談[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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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동아일보 1939-08-31 조간 02 06 貞信女校引繼者 李鍾萬氏가 有力視 來月中旬 「스테이슌」會議에서 定式決議 生死岐路에서 光明에로[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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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동아일보 1939-09-27 석간 02 04 李鍾萬氏에게 引繼承諾 磐石 우에 선 貞信女校 米國傳道本部에서 回電到着 元氏歸京卽時 具體條件折衝//元漢慶氏와 不遠 最後協議[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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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동아일보 1939-11-12 석간 02 02 京城老會總會 李鍾萬氏 引繼를 支持 理事派遣할 것도 訣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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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동아일보 1940-04-03 조간 02 01 나의 二十歲靑年時代 (二) 西間島에서 赤手로! 上海 가서 大學에 入學, 三錢짜리 勞?宿泊所의 身勢로 스물時節을 말하는 李克魯氏//家産 팔어 木船 타고 憧憬의 上京 李鍾萬氏의 스믈 때[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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