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長 訪問記滄浪客
暮春 4월. 長安 古城에는 진달내 개나리가 어지럽게 피어 春草의 年年綠을 생각게 하는데 나의 흥분한 거름은 雜踏한 鍾路 네거리를 지나 安洞으로 향하여 올너간다. 大同鑛業社長 李鍾萬씨를 찻기 위함이라.
남들은 李鍾萬씨를 마치 朝鮮의 로스촤일드요, 카-네기라고 부르며 엇든 이는 천만장자의 몸이면서 다 찌저진 양복에 각반을 치고 손소 굴 속에 드러가 坑夫들과 괭이 잡고 일도 하며 어떤 때는 5전 짜리 전차를 타고 동대문 밧 貧民窟에 나타나 100원도 주고 1,000원도 주고 도라온다 하여 「海王星」에 나타나는 몬테 크리스트 백작 모양으로 상상하는 이도 있다. 어째든 세상 여러 10만명의 주목을 끄을고 있는 李鍾萬씨란 대체 어떠한 인물이며 그의 사업관 황금관은 어떠한고 필자 또한 궁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幾未에 나의 발거름은 벽돌 2층집 문턱 앞에 다달었다. 4, 5樹의 庭前 靑松이 입구를 아담하게 장식하였고 懸板에는 백대리석 우에다가 金字로 大同鑛業株式會社의 8字를 刻入하여 노았다.
벌서 오후 4시, 8시간 勞役하는 官公廳이면 正히 退廳할 시각이다. 사장실 문을 叩한 즉 寬厚裕福한<40> 長者風의 巨人이 마저 준다 생각하면 滄然한 생각이 든다. 이 건물과 이 사장실이야말로 朝鮮 문화사를 여러 빛갈로 장식하든 녯 자최 머물든 곳 아니든가. 실로 朝鮮日報 앉었을 적에는 李商在 翁을 爲始하여 安在鴻 申錫雨 兪鎭泰 등 한다하는 巨人들이 드나들며 안팍으로 사회 일의 采配를 잡든 자리요 또 後日央日報가 되면서부터 呂運亨 崔善益 등이 또한 이 의자에 걸터 앉어 천하를 논하든 곳이 아니런가.
世事 愴惶함이 어찌 이러틋 심하든고. 大人은 市井에 *한다더니 當年 諸氏 지금도 서울에 잇는가 而今엔 안부조차 드를 길 없다.
氏의 信條 몇 가지
기자-선생의 재산은 선생 스사로가 얼마라고 평가하심니까.
李-글세요. 무에라 할는지요. 세상 人士들이 더 잘 아라주실걸요.
기자-기어히 선생 입으로 말슴하여야만 되신다면?
李-長津鑛山의 작년 産金額이 약 2백만원에 달하는데 그 중에 실지로 鑛石을 팔아서 현금화된 돈이 1,054,000원쯤 되고 남어지 약 90만원어치는 鑛石을 파내 노코도 長津 지방의 電化施設이 느저서 미처 팔치 못하여 현지에 싸여 노코 있어요.
기자-그런다면 금년의 예정액과 장래는요.
李-금년 産額은 이미 總督府 産金課에서 정밀하게 과학적으로 계산하여 2백만원어치야 나올 터이니 그 지정액대로 파내라 하여 꼭 그 예정대로 지금 진행 중에 있으니 금년은 2백만 원어치는 나오겠지요. 그리고 수년만 지나서 採鑛施設이 완성되면 꼭 1천만 원은 매년 파 낼 수 있다고 자신해요.
기자-녜. 잘 알겠음니다. 그러면 선생에게 負債는 얼마나 있어요.
李-광산시설과 학교사업과 사업을 작만하느라고 약 1백만원쯤 어더썻는데 그 중 큰 빗은 産金會社서 융통해 온 돈 70만원이지요.
기자-드른즉 長津鑛뿐 아니라, 선생에게는 다른 데도 금광과 특수광과 철광 등이 있다 하든데요.
李-네. 금광은 全鮮에 아직 數十處 있고 철광이 매장량 1억만噸짜리가 平北에 하나가 있지요.<41>
기자-長津鑛山이 年收 1천만원 한다면 아모리 적게 평가하여서 다른 平和産業에 비해 볼지라도 3할의 이익으로 假定한다면 그 金山의 평가가 약 3억원이 되겠음니다. 그려.
李-3억원이랄지 5억원이랄지는 평가할 길이 없지만 아무튼 吾人이 일즉 듯지 못하든 거액에 달할 줄은 짐작함니다.
기자-三菱, 三井같은 데서 1, 2억만원으로 팔나 하면 파시겠서요.
李-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내 손에서 떼 노치지 않겠음니다. 이것도 하날이 우리에게 준 큰 선물임니다. 그것을 어떻게 팔든지 하겠음니까.
氏의 事業觀은 如何한가
기자-이미 광산에서는 성공하섯거니와 朝鮮의 산업으로 치면 이밧게도 年産 4천만원하는 정어리 어업이 있고 또 수천만원을 헤는 枕木 중심의 목재업이 있느데 다른 사업에는 投足하지 않으럼니까.
李-결코 안하겠음니다. 나는 고향인 慶尙道에서 일즉 어업을 약 3년 하여본 적이 있는데 우리 성질 갖이고는 어업이란 참아 못할 일입데다.
기자-이익이 적어서요?
李-아니, 이익이야 하로밤 구물에 잘 걸니면 여러 만원이 생기지요. 그러나 그것은 目前에서 수만 마리의 산목숨을 끈어 놋는 일입데다. 고긴들 제 생명을 앗기는 생물이 아니겠어요. 그 아니 죽으려고 애쓰는 어류의 생명을 기어히 *아서 버리는 그 일이 참아 가슴이 압허서 이 일은 數萬金이 一夜之間에 생긴대도 못할 일이구나 하고 스사로 아조 단념하고서 어망도 파라버리고 어선도 남에게 넘겨버리고 손을 털고 나앉었지요. 이밖에 나는 농업도 하여보고 학교 교원도 하여보았고 아마 세상 各樣 직업은 아니한 것이 벌로 없는데-.
기자-없으신데 그 중에 이 광업이 가장 하실만한 일로 택하섰음니까.
李-네 그럿습니다. 이것은 지하에 뭇긴 보물을 즉 하느님이 주신 보물을 그렇게 악착한 수단, 말하자면 제도만 잘 꾸민다면 광부를 搾取하지 않고라도 악을 쓰지 않고라도 파내일 수 있으며 그 파내인 것은 국가 사회에 둘도 없는 보물이 되어 善用만 한다면 왼인류의<42> 행복에 바칠 수 있는 것이니까 나의 이상과 성격에 가장 마저요.
기자-그러나 항용 세인의 생각에 의하건대 富益富라 하여 十萬長者는 百萬長者되려하고 百萬長者는 또한 千萬長者되려하는 것이 人之常性인데 선생께서도 더이 以上 큰 부자 되시려고 생각 안하심니까.
李-안여요. 나는 斷言함니다. 돈을 위하여 이 이상 더 추구하지 않겠어요. 나의 念願은 「로스촤일드」나 카네기되는 데에 있지 않어요.
氏의 人生哲學
기자-실례지만 長安 부자 처노코 妻妾 거느리지 않은 이 드물고 또 부자 소리 듯는 이면 의례 阿房宮 같은 호화로운 저택을 짓고 그리고는 美衣美食하는 것이 통례인데 선생만은 불과 수천원되는 조고만한 집에 게시고 寵妾햇단 말 못들었고 남들처럼 美酒美衣하시지도 않으니 선생의 인생의 樂은 어데에 있음니까.
李-(침묵)
기자-은행통장을 직히고 금고 문을 開閉하는 것으로 樂을 삼는 이도 많은데 선생은 재산의 대부분을 이미 大同工業專門學校에 내섰고 또 大同農村과 大同鑛山에 내섰으니 그러신 것 갓지도 않고-.
李-무러주시니 감사함니다. 나의 樂은 道를 닥는 데 있오이다.
기자-道라시면?
李-좋은 經典을 十讀百讀 하는 사이에 옛 성현의 교훈이 저절로 알려저요. 그분들의 하신 자최의 萬分一이라도 닥거볼려고 생각하는 점이외다.
기자-좀 더 깊이 말슴하여 주시면
李-나의 書架에는 經書가 노여있어요. 그것은 녯 성현의, 이것을 기회있는 대로 보면서 吾日三省吾身 하는 부즈런으로 이 세상에 아못조록 도음되는 몸으로서 지내려 생각하여요.
기자-釋迦서요.
李-녜. 釋迦께서는 환락의 王城과 고귀한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人世의 번뇌를 해결코저 중생을 구제하시려 몸소 그 艱難의 修道를 하시지 안엇슴니까. 저도 이 세상의 슲음과 쓰라림을 다만 조곰이라도 구하는 몸이 되어지이다 하고 염원하는 길에 섯슴니다.<43>
기자-釋迦牟尼뿐이심니까?
李-성인은 다 숭배 함니다. 기독께서는 제 손소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까지 저의 원수까지 용서하실 것을 말슴하였서요. 나도 내 몸이 낫즌 것을 常時 생각하여 아모조록 또 어떠한 경우에든지 남을 용서하고 같이 잘 사라갈 길을 찻는 使徒가 되려해요.
기자-선생은 漢學의 素養이 깊으시다니 그리면 孔夫子께도.
李-네. 論語도 깊이 읽슴니다. 孔夫子께서 늙으실 때까지 轍環天下하시며 세상에 道를 펴시기에 애쓰신 그 정신과 노력을 본받으려고 애씀니다.
기자-그러한 정신수양 하시는 길 이외에 또 다른 일이 없음니까.
李-다 같이 잘살 길을 찻자는 일 이외에는 없오이다.
氏의 將來 獻身할 길은
기자-그러면 이미 巨萬의 황금을 더 추구하시지 안는다 하고 또 人世의 향락을 필요 이상으로 찿이 않으신다하고 성현의 뒤를 따르신다 하면, 현재의 사업과 선생압헤 차려지신 그 屢億의 돈과의 관계는 어떻게 됨니까.
李-나는 지금 내가 앉은 이 사장의 자리란 것이 실상은 本意가 아님니다. 나는 이러한 자리를 떠나서 저 坑夫들과 같이 굴속에 드러가 그네와 같이 일하고 그네를 가르치고 하는 것이 더 마음이 편안하고 또 그가 願이여요.
기자-그것을 지금 못하시는 사정은?
李-언제든지 현재의 여러 사회와 학교를 맛기어 잘 마터주실 분만 한 분이 나선다면 나는 언제든지 물너나 안겠음니다.
기자-한두 개인의 인격자를 찻슴니까.
Dal Ho LEE, [8/04/2022 4:17 PM]
李-그보다도 鐵과 같이 다저진 조직체를 갖고 십소이다. 그러기에 내가 관계하는 온갓 사업기관은 뒷날 내가 없서도 아모 꺼리김이 없이 잘 도라가도록 모도 다 조직체를 완성하려고 생각하고 있오이다.
기자-그 조직체가 완성되는 날이면?
李-나는 돈 관리라거나 돈 버으는 일에서 아조 떠나서 교육사업같은 人世의 英材를 양육하는 일에 일생의 힘을 다 바치려 함니다.<44>
기자-무슨 案이 섰음니까. 거기 대하여 흉중에 저윽이 짜놓은 풀댄이 있음니까?
李-아직은 실현전이니 말슴하고 십지 안슴니다만은 너무 널이 발표하지 말 것을 약속하신다면 아직 具體案은 아니나 심중의 의도를 말슴하지요.
내 손으로 대학 하나를 꼭 만들고 십소이다. 2, 3천만원이면 하나는 세울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 대학은 몃몃 단과대학으로 구성할 생각인데 내 뜻대로 된다면 朝鮮 현실에 적합한
工科大學
農科大學
鑛山科大學
이 세가지쯤을 만들어 종합대학을 만들고 십소이다.
기자-돈은?
李-長津鑛山만 해도 年産 1,000만원될 것이 不出*年하니 그 하나만 가질지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기자-현재의 平壤 大同工專도 그의 준비임니까.
李-그렇게 해석하서도 조캤소이다.
말이 이에 미치매 나는 心中에 울었다. 何相見而晩也야고 이분의 손목을 붓잡고 오래도록 울고 십헛다.
저녁 斜陽은 主客의 興奮한 얼골을 빨가케 빛친다.<45>
Dal Ho LEE, [8/04/2022 4:18 PM]
삼천리 제11권 제7호 1939년 6월 1일. 이종만씨 사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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