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ne 22, 2025

1974년 통일신보 이종만 수기

Google Gemini

1974년 통일신보 기사 1] 하나는 이종만 수기. 조금 잘렸는데 읽을 수 있는 만큼일고, 나머지는 조금 짐작하여 적어주세요. 2] 또 하나의 기사 역시 조금 잘렸는데, 역시 읽을 수 있는데로 적어주세요.


1974년 통일신보 기사 중 이종만 수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수령님의 품속에서

역할 제재는 못 되지만 다만 어둠 속에서 칠전팔기하면서 세상 풍파를 헤쳐온 하나의 민족자본가였던 내가 오늘 인민 낙원에서 존엄 있고 보람 있는 생을 누리며 조국통일 위업에 적으나마 이바지할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 주석님의 하해같이 넓고 깊은 품에 안겨 그이의 가르치심을 따라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이 글을 쓰는 바이다.

나라 잃은 치욕의 시대에 태어나 잘난 것 없는 양심 하나를 의지하여 한평생을 보낸 하찮은 수난의 기록을 감히 피력하고저 이 글을 초하는 바이다.

재생의 영광을 안고

내가 우리 민족의 위대한 수령이신 김일성 장군님을 처음 만나 뵙게 된 것은 1949년 6월 25일, 평양에서 열린 전국적 민족 통일 전선 조직인 조국 통일 민주주의 전선 결성 대회에서이다.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전설적 영웅이시며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이신 김일성 장군님께서 날로 심각화되어 가는 미제의 분열 책동에 대처하여 애국 역량을 결속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의 한화리로써 소집하신 이 대회는 남북조선의 72개의 정당, 사회단체들을 망라한 역사적인 회의였다.

나는 감격에 목이 메여 인사의 말씀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였다. 장군님께서는 회의 참가자들에게 나를 소개하시고 친절히 대해주시며 자신의 곁에 앉혀주시었다. 그이께서는 정말 구면인가 싶을 정도로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시었다. 나는 어느새 평양을 향하면서도 한가다 지 않던 그 생각, 나를 어떻게 대해 주실까 하던 위구심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허물없이 이야기하게 되었다. 장군님께서는 연해 웃음을 띠시고 잘 왔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시었다. 내가 회의장인 모란봉 극장에 이르렀을 때는 남북에서 모여온 각계각층의 인사들로 차 넘쳤었다. 수령님께서는 진정 넓고 넓은 도량과 포용력, 인민적 소박성의 소유자이시다. 걷잡을 수 없는 수령님의 음성은 다정하고 힘차게 조선의 앞날로 사람들을 힘있게 이끌었다.

김구는 이렇게 자신의 심경을 고백하면서 자기의 완고하고 편협한 정치적 견해를 바로잡았던 것이다.

(진정한 애국자가 공산주의자다.)

불멸의 역사를 기록해오신 불세출의 영웅, 김일성 장군님의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고매한 덕성에 대한 사뭇 걷잡을 수 없는 동경과 흠모는 나로 하여금 평양을 찾는 장도에 오르게 했던 것이다. 나의 이러한 염원과 기대가 이루어졌던 만큼 새로운 감회와 의혹 속에 조국 통일 민주주의 전선 결성 대회 2일 회의를 맞았다. 그런데 우리는 뜻밖의 소식에 접하였다. 바로 간밤에 서울에서 김구 씨가 피살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이날 회의의 의장인 홍명희 선생이 김구 씨의 조난과 관련하여 대회의 이름으로 조의를 표하였다.

"...김구 씨는 조선 독립을 위하여 노력 분투한 분입니다. 비록 그가 민주주의적 자주 독립 방향에 대하여서는 모자람이 있었지만".

나는 고뇌와 암중모색 속에 오래도록 방황하였다. 바로 이럴 즈음에 김일성 장군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뻗쳐주셨던 것이다. 재산도, 사회적 지위도, 가족들의 거취 따위도 이 영예에 대비될 수는 없었다. 그것은 한 개 인간의 정치적 생명과 관련되는 것이었고 개가죽을 쓰고 굴욕을 참느냐, 그렇지 않으면 하루를 살아 지조를 지키는 보람 속에 사느냐 하는 매우 소중한 문제였기에 비장한 결단으로 올랐었다.

해방 후 수많은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사들이 사선을 넘어 조국통일의 염원을 안고 한자리에 모여온 것은 무엇보다도 한평생을 조국 광복의 위업을 위하여 싸워오셨고 나라의 현재와 민족의 장래를 누구보다 멀리 내다보시고 근심하시는 김일성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따라 배우고 실천에 옮기려는 정열과 의욕을 지닌 때문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경애하는 수령님의 애국 역량 결속 방침이 얼마나 거창한 생활력을 가지고 천만 사람의 가슴을 돌게 하였는가는 대회가 끝난 직후인 6월 29일에 열린 <조국 통일 민주주의 전선 결성 경축 평양 시민 대회>를 통하여 절실히 느꼈다. 한마디로 표현하여 구름처럼 모여든 수십만으로 헤아려지는 그 모든 사람들의 얼굴마다에는 자주와 창조를 상징하는 무한대의 행복과 진보를 추구하는 영웅적 기상이 빛발치고 있었다. 이 대하의 흐름 속에 남조선에서 온 인사들도 합류되어 실로 민족 단합의 거창한 흐름이 거리에 차고넘쳤던 것이다. 얼마나 미더운 힘의 과시였던가!

외세 의존과 사대 망국 풍조가 풍미하여 이질화된 남조선 풍토에서 비분 강개하며 밤을 지새우며 현실의 추이를 응시할 수밖에 없었던 나로서는 너무나 대조적인 현실 앞에서 가슴은 뜨거워지고 눈물이 걷잡을 길이 없이 흘러내릴 뿐이었다. 일찍이 항일 무장 투쟁 시기의 나날에도 김일성 장군님께서는 무작정 공산주의에 대하여 그릇된 편견을 가지는 완고한 민족주의자들이거나 고루한 종교 의식에 사로잡힌 계층까지도 너그럽게 포섭하셨고 지어 완미하고 고집불통의 ≪구국군≫ 우두머리들까지도 참을성 있는 설복으로 감화시켜 공동의 원쑤를 물리치는 길에서 손을 맞잡았다는 것이 아닌가!

가슴 펴고 새 생활의 길로

나는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기술자들을 이끌고 평북 땅을 여러 차례 답사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1954년 초봄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기술자들과 함께 현지 답사를 진행하던 때의 일들이 제일 인상 깊다. 평북 땅의 3~4월은 아직 몹시 추웠다. 우리는 눈길을 헤치며 과거 왜정 때 내가 표본을 뜯어 탐사 흔적을 남겨놓곤 했던 자리를 두루 찾으며 여러 군데서 전망성 있는 광석들을 표본으로 뜯어내었고 앞으로 채굴이 되는 경우에 대비하여야 할 수송, 기타 문제에 대한 조사 자료를 갖추어 수령님께 보고를 올렸다.

그러나 나는 광업부의 고문이라는 요직에까지 배치하여주신 어버이 수령님의 두터운 신임에 보답할 만큼 지하 자원 개발에서 이룩한 것이 없다. 게다가 최고 인민 회의 대의원의 중책을 지고 또 조국 전선 상무의 직책에 있을 때에도 변변하게 이루어놓은 일이 없다. 정말 공밥 먹는다는 말이 나를 두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기가 그 몇 번인지 모른다.

----

  1. 1974년 통일신보 기사 중 다른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주석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었다. “오늘 우리 나라에서 북과 남 사이에 조성된 긴장 상태를 해소하고 조국의 자주적 평화 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서는 정전 협정을 공고한 평화 협정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수령님의 가르치심에 의하여 최고 인민 회의 제5기 제3차 회의조국의 자주적 평화 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한 전제를 마련할 데 대하여 토의하였다. 그리고 미국과 평화 협정을 맺을 데 대한 제안을 내놓았으며 얼마 전에 있은 조국 통일 민주주의 전선 중앙 위원회 확대 회의에서는 미국 당국이 이에 호응해 나서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력히 주장하였다.

미국 당국과 평화 협정을 맺을 데 대한 공화국 정부의 제안은 조선의 평화를 항시적으로 위협하는 근원을 제거하고 조선에서 공고한 평화를 확고히 담보하며 우리 인민의 조국 통일 위업을 방해하는 외세의 간섭을 종식시키고 조국의 자주적 평화 통일을 촉진시킬 수 있는 전제를 실제적으로 마련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최고 인민 회의가 미국 국회에 보낸 편지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 조선 정전 협정 체약 쌍방인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과 미합중국 사이에 
  • 서로 상대방을 침범하지 않고 무력 증강과 군비 경쟁을 그만두며 
  • 미국은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통일을 방해하지 않으며 
  • 남조선을 강점하고 있는 미제 침략군을 철거시킨 다음 
  • 우리 나라는 그 어떤 다른 나라의 군사 기지나 작전 기지로도 되지 않을 것을 기본 내용으로 하는 
  • 평화 협정이 체결되고 그것으로써 현 군사 정전 협정이 대체된다면 
  • 조선에서 새 전쟁의 위험성을 배태하고 있는 근본 요인이 제거되고 
  • 군사적 대치 상태는 해소될 것이며 북과 남 사이의 긴장 상태는 실질적으로 완화될 것이다.

또한 조선에 대한 미제의 내정 간섭을 종식시키며 남북 공동 성명의 이행을 순조롭게 하고 조국 통일의 3대 원칙에 따라 북과 남 사이의 관계를 개선 발전시키며 조국 통일 문제를 조선 사람 자신의 손에 의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서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데도 지극히 유익한 현실적 제안이며 미국 인민의 이익에도 합치되는 합리적인 조치로 될 것이다.

조선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바꿀 데 대한 공화국 정부의 제안은 자주적 발전과 평화를 지향하는 현 시대의 추세에도 맞는 공명정대한 제안이다. 조선 정전 협정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 말해주다시피 정전 협정을 구성하고 있는 총체적 내용은 오직 하나의 지향 즉 조선 정전의 확고성을 보장함으로써 조선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조선에서 공고한 평화를 확립하며 국제 긴장 상태, 특히 아시아에서의 평화 유지에 기여할 정신으로 일관되어 있는 바,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는 정전의 필수적 요구이기도 하다.

조선 정전 협정 서언에서도 명백하게 지적되어 있는 바와 같이 정전 협정의 서명자들은 "쌍방에 막대한 고통과 유혈을 초래한 조선 충돌을 정지시키기 위하여서와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된 때까지 조선에서의 적대 행위와 일체 무장 행동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의 의무 조항들을 준수함에 대하여 동의하였다".

조선 정전 협정은 미제의 침략에 의하여 진행된 무장 충돌의 정지를 규정하였다. 조선 정전 협정에서 정식화된 정전의 모든 규정들과 협정을 구성하고 있는 총체적 내용은 모두 조선에서 적대적 무장 충돌의 완전하고 종국적인 정지를 예견하는 데로부터 출발하였다. 정전 협정 제1조에서 "무장 충돌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며 그의 재발을 완전히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서 군사 분계선과 비무장 지대 설치를 예견하였으며 제2조에서는 군사 정전의 확고성을 보장하며 정전을 공고한 평화에로 전환시키는 데 유리한 조건을 조성할 목적 밑에 평화와 정전의 효과적이며 구체적인 조치를 예견하였다". 정전 협정 제5조 부칙에서는 정전 기간을 실질적으로 규정하였는바 본 정전 협정의 유효 기간은 쌍방의 어느 일방의 파괴 행위 또는 일방적인 폐기 선포의 방법으로써 협정의 효력이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조선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적당한 협정에 의하여 교체될 때까지 그의 유효성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2년간의 남북 대화가 남아있는 한 조선에서 긴장 상태를 해소하고 평화를 공고히 할 수 없으며 도대체 남조선 통치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사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오늘에 와서 박정희 일당과 북과 남 사이의 군사적 대치 상태를 해소하며 평화 협정을 체결할 데 대한 문제를 가지고 논의하는 것은 아무런 의의도 없다는 것이 명백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바꾸기 위하여서는 그것을 담보할 만한 실권을 가진 확실히 당사자들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응당하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조선 정전 협정의 체약 쌍방이며 실제상의 당사자들이다.

처음에 조선 정전 협정은 조선 인민군 및 중국 인민 지원군과 유엔군 사이에 체결되었지만 조선에서 중국 인민 지원군은 이미 오래전에 철거하였으며 남조선에 있는 이른바 ≪유엔군≫이란 오직 미제 침략군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2년 17일간 진행된 조선 정전 담판 과정을 놓고 보더라도 이른바 《유엔군》 측 대표단은 수석 대표 미 해군 중장 터너 조이와 그 교체인 미 육군 중장 해리슨이며 참모장교 머레이에 이르기까지 미국인이었으며 이미 3대를 피로 조선 인민의 피를 빨아온 수석 번역원 언더우드 3세로부터 자수에 이르는 보조 성원까지 다 미국인들이었다.

국제적 판례와 국제법적 요구에 의하더라도 정전 협정은 평화 협정 체결을 전제로 하고 있는 만큼 법적 견지에서 보더라도 응당 조선 정전 협정은 평화 협정으로 교체되어야 한다. 따라서 조선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는 더는 지체할 수 없는 성숙된 요구이다.

공화국 정부는 이러한 모든 실태에 비추어 남북 조절 위원회 회의에서 현 군사적 대치 상태를 해소하는 데 선차적 의의를 부여하여 북과 남 사이에 평화 협정을 맺을 것을 남조선 측에 거듭 제의하였으며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 제안들을 내놓았다.

정전 협정에는 “본 정전 협정의 조항과 규정을 준수하며 집행하는 책임은 본 정전 협정에 조인한 자와 그 후임 사병관에게 속한다”. 고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의연히 전쟁 상태인 조선 정전은 다시는 열전으로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 정전 협정 자체의 요구이다. 정전 협정 제35항 및 제49항은 이를 더욱더 명백히 확증하여 준다. 이 조항들에서는 정전 협정을 수정 혹은 증보할 것을 제의할 수 있게 되어있는 바 이러한 수정과 증보는 반드시 더 유효한 정전을 보장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어야 접수될 수 있게 되어있다. 더 유리한 조건이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반 사실은 조선에서 긴장 상태를 해소하고 조선의 자주적 통일에 장애로 되는 외부적 요인들을 제거하며 조선 사람끼리 통일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전제를 마련하자면 근 30년간이나 남조선에 자기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모든 군사 통수권을 틀어쥐고 있으며 정전 협정에 조인한 당사자인 미국과 직접 평화 협정 체결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응당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 조선에서 긴장된 정세가 지속되고 있는 근원이 다름 아닌 미제의 간섭과 침략 책동에 기인되는 만큼 조선의 평화와 평화 통일을 위해서도 미국의 모든 간섭 책동이 종식되어야 하며 미제 침략군대가 남조선에서 물러가야 한다. 공화국 정부가 미합중국과 직접 협상하여 평화 협정을 체결할 데 대한 문제를 발기한 것은 바로 이 모든 현실에 대한 과학적 판단에 기인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제는 이에 대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만일 미제가 조선에서 수치스러운 패망의 길을 다시 걷지 않으려거든 응당 공화국 정부의 정당한 제의에 하루빨리 응해 나서야 할 것이다.

국제단신

  • 우간다 대통령 아민은 유엔이 개편되어야 하며 유엔 본부가 우간다로 이동되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는 "유엔과 특히 안보리사회는 몇 개 나라의 이익에 복무할 대신 민주주의적 기능을 수행하도록 조속한 이행을 위하여 보다 개편되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유엔이 불가담의 환경에서 자기의 신성한 기능을 편중 없이 공평하게 수행하며 평화, 정의 및 평등을 믿는 모든 나라들의 염원을 만족시킬 수 있다". 고 말하였다.
  • 일본 주재 전 미국 대사 바이워는 미국이 박정권의 진술을 일정하게 변경시키기 위한 노력으로서 남조선으로부터의 미래 철수와 군사 원조 중지를 개시하여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그는 요망되는 것은 미국사 톤에 접수될 수 있는 정치적 개편이다.

지금 확실한 식량 위기가 자본주의 세계에 닥쳐왔다. 최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세계 곡물 생산량은 작년보다도 약 5,000만 톤 줄어들 것이며 재고량은 15년 최저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한다. 특히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큰 농산물 생산 국가이며 식량 수출 국가의 하나라고 하는 미국에는 올해에 큰 흉년이 들었다고 한다. 올해에 미국의 많은 지역에서 잇따른 가뭄 끝에 큰물이 났고 큰물 끝에 이른 서리가 호되게 내렸다. 그리하여 가뭄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만도 100억 달러 이상에 달하며 곡물 생산량은 수천만 톤이나 줄었다. 그중에서 밀은 근 30%, 강냉이는 25%, 콩은 15%, 전반적인 사료용 곡물은 그 15% 줄어들었다. 이것은 미국식 ≪농업 경영 방법≫이 어떻다느니, ≪농업 기술≫이 어떻다느니 하던 미국의 농업이 자연재해를 막아낼 만큼 기술적으로 준비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다. 올해의 큰 흉작에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미제 지배층은 "올해 흉작이 미국에 다년간 영향을 미칠 것이며 식량에 대한 수요와 공급 간에 심한 불균형을 조성하고 있다". 고 비명을 올리면서 ≪식량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느니, ≪식량과 사료용 곡물 생산을 줄여야 한다≫느니 하고 아우성치고 있다. 한편 간악하기 그지없는 미제는 이것은 정전을 완전한 평화 상태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profile picture



No comments:

Post a Comment

Eric Schwimmer - a biographic article

Google Gemini === You said Enquiery on Eric Schwimmer - My anthrologist brother in law. a secular Jew, originally from Holland before the 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