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ne 20, 2025

어머니사, 가족사의 미스테리 제 5 - 이민 전사에서 계속... | Facebook

(13) Sejin Pak - [어머니사][가족사][한국현대사] 어머니사, 가족사의 미스테리 제 5 - 이민 전사에서 계속... | Facebook

Sejin 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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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사][가족사][한국현대사] 어머니사, 가족사의 미스테리 제 5 - 이민 전사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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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편:
https://www.facebook.com/sejin.pak8/posts/10159555169452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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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편에서는 1960년대 초의 어머니의 행적을 보자면 갑자기 브라질로 이민을 가기로 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30대 말의 여성으로 공장을 경영하면서 1961년에는 한국생산성본부의 기업경영자 훈련 코스까지 마치고, 그 다음 해에는 한국을 떠나 브라질로 이민 가는 길을 모색하는데는 뭔가 자식들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 가족 알범의 어머니 사진들을 보며 이제서야 나에게 떠올랐던 것이다. 자식들이 들었던 이민의 이유란 4 자매의 <자식들의 장래를 위한 것> 이었다는 것이었고, 우리 자식들은 그 이상의 이유는 묻지 았았던 것이었다.
 
- 지난 주에는 처음으로 우리 집안의 1964년에의 브라질 이민의 <갑작성>의 미스테리에 주목하게 되어 내가 그 이유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전에도 자식의 장래를 위한다는 이유가 아닌 이민의 이유로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은,
 
- 그 하나는 이민을 하고난 후에 아버지가 종종 한국은 부정부패의 나라라는 말을 하셨던 것과, 브라질에서 카나다로 재 이민을 하고 토론토에서 1985년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실 때 까지 한번도 한국을 방문하려고 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어떤 경험이 한국 사회에 대한 그런 부정정인 평가를 가저오게 했는지는 나는 잘 모르겠으나, 서울 시청과의 관계였지 않았나하는 것이 나의 추측이었다. 아버지는 한양공대 교수였지만 어머니와 같이 경영하는 공장에서는 산업용 펌프와 모터를 제조했는데, 상당 부분은 시청과의 관계의 일이었고, 잘은 모르겠으나, 그 경험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나온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러나 이 이유는 이민의 <갑작성>의 설명은 되지 않는다.

- 또 한 가지 이유로서 내가 오래 전에도 혼자서 생각해 본 것은 우리 집안에는 가까운 친척이 북으로 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우리 가족이 이민가게 될 가능성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 친척 집안은 아버지가 의사였던 이 집안은 우리가 브라질로 이민 한 얼마 후에 그 나머지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했다. 그런데 그 집안에서 나와 나이가 같은 오촌 정도의 남자 친구가, 자기는 이민가지 않겠다고, 혼자 한국에 남았는데, 영화 만들기가 희망하는 직업이었는데 70년대와 80년대에 연좌제로 희망하는 길이 자꾸 막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 또 우리 가족이 브라질로 이민할 때, 아버지 없이 나머지 가족 만 우선 이민하고, 아버지는 후에 따라오기로 되었는데, 아버지가 혼자오실 때에는 가족은 이미 브라질에 가 있는데도 아버지는 1년 반 후 (1966년) 에 출국에 어려움을 격어서 오래 걸렸다고 한다. 그 이유가 북으로 간 친척과 관계된 것이었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이유는 1961년의 군사 구테타가 가저온 반공체제의 강화와 관계가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된다.
 
- 지난 주에는 2010년에 출판되어 이미 읽었던 어머니의 자서전 <나는 이렇게 평화가 되었다>을 <가족사의 미스테리>를 염두에 두고 다시 읽게 되었다. 그것은 <북으로 가신 외 할아버지> 라는 문제와 관련시켜 생각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렇다. 우리 집안에는 북으로 가신 외할아버지가 계신다. 단지 우리 자식들은 외 할아버지가 북으로 가신지 모르고 살았었다. 우리가 1964년까지 한국에서 살고 있을 때는 자식 (나이: 18, 17, 15, 9)들은 외 할아버지는 6.25 전쟁 때 행방불명이 되신 걸로 알고 있었다. 집안에서 외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이 살아서, 나에게는 외할아버지의 존재는 의식에 없었다. 누나들은 부산에 피난 갔을 때 외삼촌 집에서 외할아버지의 큰 사진을 보아서 인상에 남아있다는 정도였다. 나는 당시 어려서 기억에 없다. 그런데 그 외 할아버지가 이민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 외할아버지가 북에 살아계실 것이라는 것은 후에 알게 되었다. 브라질에서 4년 이민 생활을 하고난 우리 가족은 카나다로 재 이민했는데, 카나다에는 1968년에 도착하자 마자, 어머니는 북에 계시리라 생각되는 아버지 찾기를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뉴욕 유엔본부에 있는 북조선 대표에게로 아버지를 찾는다고 연락을 했다. 그러나 답은 없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73년에 외할아버지가 북에 살아계시다는 글이 북의 노동신문에 나온 것을 보게되었다. 영어 표현으로 The Rest is History. 그 후에 일어난 일들은 (너무 많고, 너무 어마 어마해서) 우리 가족사의 역사를 크게 결정해버리게 된다. (그런 이야기는 후에)
- 외할아버지와 이민과의 관계를 살펴보려면 다시 이민 전의 이야기로 돌아가야한다. 한국에 살 때 집안의 십대의 아이들은 외할아버지가 북에 계신지,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러나 어머니는 북에 살아계시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외할아버지가 사라지셨을 때부터 아신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자서전에 나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외할아버지는 1949년, 한국 전쟁이 있기 전, 어느 날, 서울에 사는 어머니를 찾아와서, 어느 곳인지는 말을 하지 않으시고, "먼 곳"에 간다는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한국전쟁이 있었으니, 행방불명으로 취급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떠나신지 7년 된 1956년에 당시 서울 북아현동 집에 어떤이가 찾아와서 외할아버지가 북에 살아계신다는 이야기를 전해주러 왔다고 했다고 한다. 더 이상은 모른다고 하고 떠났다고 한다. 어머니는 자서전에서 믿어야 좋을지 미스테리라고 썼다. 그러나 남에게 말할 수는 없는 아버지 소식이나, 어머니 머리에는 강하게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 전달자는 간첩이었을 수 도 있다. 1961 군사 구테타 후에는 아버지가 북으로 가신 것의 중대성을 더 강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자식의 장래를 위하여>라는 이유에는 <더 넓은 세상에 나가서 살거라> 만이 아니라 <자진해서 북으로 간 외할아버지>의 자식에게의 영향을 생각하게 된 것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 다시 읽으니 어머니 자서전에 그런 말도 나온다. 그런데 지난 번에는 그걸 지나치고 읽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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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어머니는 1973년에 카나다에 사실 때 아버지를 찾아 북조선에 갔다. 반공의 유신시대라서 한국 만이 아니라 해외의 교민들도 대부분 반공의식을 가진 시대였다. 우리 가족에게 온 그 충격은 컫다.
사진 2: 1977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북으로 간 외삼촌 가족.
사진 3, 4: 같은 해 어머니는 다시 북조선에 아버지 묘지에 찾아갔다.
사진 5: 외삼촌 (어머니에게는 동생) 가족과 함께
사진 6,7: 1995년 방문 때는 외 할아버지 묘지가 <애국열사능>으로 옮겨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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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의 이름은 (이제는 많이 알려진) 이종만 (또는 리종만)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0610240555601451
https://www.chosun.com/.../11/03/DFBGHO7ND5CCHN6Y7F5GJ6RU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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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외 할아버지의 고향은 북쪽이 아니라 남쪽 (울산)이다. 가족을 모두 두고 북으로 가신 것이었다. 왜? Why? That is a good question.
- 후에 전쟁 당시 (사진에 나오는) 작은 외삼촌이 아버지를 찾아 북으로 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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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민 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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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reactions:55Kenji Murata, 정재길 and 53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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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e Quesadilla
Thank you for 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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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 Ae Choi
맘고생 생고생 많으셨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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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선생님, 글 모아서 책 내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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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in Pak
Park Yuha 어머니 자서전이 이미 있지만, 후에 <아들이 보는>이라는 시각에서 쓰고 있으니 다른 글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한참 가야 합니다. 어머니 일기와 편지들도 다시 읽고 사진들도 시간을 들여 의미있는 것들을 찾고 합니다. 한글을 못읽는 가족 세대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로도 생각하고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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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Sejin Pak 응원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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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Sejin Pak 저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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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미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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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a Kim
위의 왼쪽 아래 사진: 좌로부터 리형우 외삼촌과 아들, 딸, 외숙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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